<전력경제신문 창간 18주년 특집-석학의 제언>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
||
| 박종배 건국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 ||
도소매 전력시장 개혁, 적기 전력망 확충,
ESS와 같은 유연성 자원의 확보 없이는
탄소중립도 반도체와 인공지능 산업 등
미래 혁신 산업 기반 둔 경제성장 불가능
요즈음 인공지능(AI) 기술은 우리가 이전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영역까지 무서운 속도로 진출하고 있다. 2016년 세인의 관심을 끌었던 구글의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 대결은 AI 등장의 서막에 불과하였다. 인터넷 텍스트 탐색의 시대를 지나, 최근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흥미 단계를 넘어 다양한 산업에 직‧간접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례로 얼마전 만해도 소프트웨어 전공자들이 밤을 새며 작성하던 코딩을 챗GPT는 빛의 속도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논리적 비약일 수 있지만, 조만간 소프트웨어 코딩 능력은 얼마나 빨리 효율적으로 생성형 AI를 활용할 수 있는냐로 등가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곧 음성대화까지 가능한 GPT-4o(포오)까지 서비스 된다고 한다. 이러한 AI 산업혁명은 학습 알고리즘과 같은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반도체, 데이터센터, 전력공급과 같은 물리적 인프라의 확보를 필수 요건으로 하고 있다. 전통적인 텍스트 기반의 구글 검색이 건당 0.3Wh의 전기를 소모하는데 반해, 챗GPT는 구글 검색의 10배인 2.9Wh의 에너지를 소비한다고 한다. 여기에 음성 인식과 영상 서비스까지 더해지면 전기에너지 소비량이 얼마만큼 늘어날지 짐작하기조차 힘들 정도이다. AI발(發) 전력수요의 폭발적 증가는 이미 시작되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분석에 따르면,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량은 2022년 460TWh에서 2030년 1,000TWh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였다. 최근 미국의 금융 기업인 웰스 파고의 예측은 더욱 극단적이다. AI 산업으로 인한 미국의 전력수요는 2023년 3TWh에서 2030년 652TWh로 80배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작년 한전의 전력판매량이 546TWh, 전력판매 수입이 83조원 정도이니 앞으로 전력산업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여기에다 최근 일론 머스크는 AI발 미국 전력망의 변압기 부족 상황까지(“Build more transformers!”) 직접 언급하여 우리나라 중전기 업체들이 주식시장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게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미국 전력회사들과 태양광, 원자력 소형모듈(SMR) 기업의 주가가 춤추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의 전력 기업들은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 성장까지 하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의 훌륭한 주역으로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이미 電자생존(안정적이고, 경제적이며, 저탄소의 전력을 공급하는 국가만이 AI와 같은 미래의 산업 경쟁에서 생존할 수 있다는)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 40여년간 우리나라가 안정적이고 고품질의 전력을 공급하여 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가구당 정전 시간은 8.92분(’21년)에 불과하여, 독일 13.91분(‘16), 영국 46.5분(’16), 프랑스 52.6분(‘16년), 미국 284분(’19) 등 선진국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고 있다. 전력품질의 주요 지표인 전압과 주파수 유지율은 99.9%에 달하고 있으며, 대규모 광역 정전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여기에 요금까지 매우 저렴하여 주요 선진국의 절반에 불과하니, 우리나라의 주요 산업은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최근 대한상의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등 IT 신산업의 전력 의존도는 매우 높아 전체 에너지 투입 가운데 전력 비중이 각기 85%와 60%에 달하고 있다고 발표하였다. 자동차, 조선, 철강도 그 비중이 각기 61%, 59%, 41%에 이르러 전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아 전력의 경쟁력이 산업의 경쟁력과 직결됨을 알 수 있다. 적어도 지금까지의 실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최소한 A 성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최근의 우리나라 전력산업의 환경을 보면 지금까지의 낙관적 상황이 지속될 수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다. 43조원에 이르는 누적 영업적자와 15조원에 달하는 미수금을 가진 한전과 가스공사의 주가는 곤두박질 치고 있으며, 한전 사장과 가스공사 사장이 연일 요금 정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심지어 작년의 한전 판매전력량은 산업용 전력수요의 감소로 전년 대비 0.4%나 줄어들었다. 코로나 발생으로 전력 수요가 감소한 ‘19년과 ’20년을 제외하면 ‘00년 이후 처음으로 역성장 한 것이다. 전력산업이 가격이라는 질적 요소도 물량이라는 양적 요소도 모두 뒷걸음치고 있는 셈이다. 여기에 송전망 건설은 만성적으로 지연되고 있어, 영동권과 호남권의 저렴하거나 청정한 전력을 수요지에 제대로 공급할 수도 없다. 송전망 부족으로 전국의 8군데에서 제약이 상시로 발생하고, 40여곳에서 고장파급 방지장치가 설치되어 아슬아슬하게 전력망이 운영되고 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하는 데이터센터 등 신규 전기공급 신청은 허가가 나지 않으며,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재생에너지 신규 발전사업 신청도 반려되기 일쑤다. 송전망 포화 문제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상황에서 마련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을 21대 국회에서 통과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도매전력시장 개혁의 첫 걸음인 제주 시범시장은 통합발전사업(VPP)의 수익성 확보 여부와 일부 기존 재생에너지사업자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주역이었던 전력 산업이 소위 사면초가에 둘러 쌓여 있다. 확실한 것은 도소매 전력시장의 개혁, 적기 전력망의 확충, 에너지저장장치와 같은 유연성 자원의 확보 없이는 탄소중립도 반도체와 AI 산업 등 미래 혁신 산업에 기반을 둔 경제성장도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몇 일전 산업부는 에너지위원회에 전력시장 제도개선 방향을 보고한 바 있다. 여기에는 20여년 이상 미루어 둔 도매전력시장의 전면적인 개혁과 더불어 소매 전기요금의 지역 차등화와 같은 혁신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다. 도매전력시장의 개선은 흔들림없이 계획대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22대 국회에서는 전력망 확충 특별법, 해상풍력 촉진법, 고준위 폐기물 특별법 등 전력산업 관련 제반 입법들이 적시에 추진되어 AI 산업혁명 시대에 우리가 주역이 되기를 소망한다.
전력경제 epetimes@epetimes.com
